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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2008. 7. 20. 01:24 | Posted by 살고자하는 마음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대로 종(천사)들을 창조하셨으니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람의 눈에는 종이 보이지 않도록 하셨다. 사람이 종을 볼 수 없는 이유는 형상과 형체와 육체의 차이점만 이해하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눈에 보이는 육적인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형상이라는 것은 영혼의 상태이다. 그런데 영혼은 공간을 초월하니 사람의 씨만큼 아니 원자핵의 안에 있는 그 가장 작은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작아질 수도 있다. 반대로 사람들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 첫째 하늘(우주)만큼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크거나 작거나 똑같다.

 

영혼의 상태인 이 형상을 쉽게 이해하려면 물을 생각하면 된다. 물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도저히 잡을 수 없다. 또한 작은 분량의 물을 한없이 넓게 할 수도 있다.

 

형체라는 것은 형상이 일정한 형체를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이 일정한 형체를 입으면 더 이상 커지거나 작아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이 형체의 안에 있을 때는 지구처럼 커질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모양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집안에서 살 듯 사람의 영혼이 거하고 있는 육체가 있다. 육체에는 우선 뼈와 관절이 연결된 골격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피와 살을 덮어씌운 것이 바로 육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나온 영혼이 바로 이 육체를 입고 있을 때 그를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형상이 만일 형체나 육체를 입지 않으면 그 영혼은 안식하거나 즐길 수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영혼을 그 육체에 두시어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부부간에 거룩하게 하나되는 성적인 기쁨을 얻고 또한 달콤한 잠을 자며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선악의 죄를 쌓으며 이 세상을 따르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베풀어두신 그 기쁨과 즐거움과 안식을 서서히 하나씩 잃다 마지막에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그와 반대다.

 

형상과 형체와 육체가 각각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니 그 기초적인 지식을 기준으로 이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요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는 영이시다. 즉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는 형상의 상태로 존재하신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장소나 물건에 갇히시거나 제한 받으시지 않으신다. 또한 자신이 창조하신 시간을 초월하시니 커지고 작아지는 그 형상의 특징이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순간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은 물론이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는 본향인 셋째 하늘에 그 영향력을 충만하게 펼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둘째 아들은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서 태어나셨으니 아버지와 똑같은 형상이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같은 형상인 그 아들에게 셋째 하늘의 진흙으로 만드신 형체를 입혀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셋째 하늘에 계실 때는 바로 이 형체를 입고 계셨으나 2천년 전에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그 뜻을 십자가에서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허다한 종들 가운데 가장 먼저 120의 종들의 형체를 셋째 하늘의 하얀 모래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형상들이 모래로 만들어진 형체들을 입은 것이 바로 종이다.

 

그런데 종이 입은 형체는 사람이 입은 육체와는 다르니 형체는 영혼이 가진 그 강력한 힘과 뛰어난 지혜와 밝은 빛을 밖으로 낼 수 있지만 사람의 육체는 그러하지 못하며 제한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이룬 후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 후에는 형체를 입은 종보다 더 큰 능력과 더 뛰어난 지혜와 더 밝은 빛을 아버지께로 얻는다.

 

이처럼 종들은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께로 받은 그 선물들이 있기에 창조의 일과 또한 거룩한 자녀를 얻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또한 마지막 때까지 오직 말씀에 따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마음과 인격적인 판단을 가지고 행한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것이 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한 형상이요 아버지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형체를 입으셨다는 것이다. 본래 형체는 종이 입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체를 취하심으로 스스로 종처럼 겸손을 취하셨다. 게다가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사람을 거룩케 하시려는 아버지의 그 뜻을 십자가에서 이루시기 위해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까지 입으시고 낮아지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그 아들에게 이제는 모든 것을 다스리며 누릴 수 있는 그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부활시켜주셨다.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더 이상 형체가 아닌 거룩한 육체를 입고 둘째 하늘의 그 심판대에 앉아계심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태초에 창조된 120의 종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하며 아버지의 뜻과 그 계획을 이루어갈 종들을 창조했으며 그들은 다시금 둘째 하늘의 종들을 그리고 그들은 다시금 첫째 하늘에서 일할 종들을 창조했다. 하지만 둘째 하늘의 종들은 셋째 하늘의 하얀 모래로 창조되었으며 첫째 하늘의 종들은 둘째 하늘의 하얀 모래로 창조되었으니 그 형체의 재료가 다르다.

 

다섯째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이 첫째 하늘의 깨끗한 흙과 물로 빚으셨으며 뼈와 그와 같이 하얗고 투명한 것들은 둘째 하늘의 모래로 만드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담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임을 확인하신 후 자신의 그 거룩한 형상을 코를 통해 그의 안에 넣어주셨다. 그러므로 남자의 형상과 모양은 그리스도와 똑같고 그리스도의 형상은 아버지의 그 영광스런 형상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제 사람이 종을 볼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께서는 형상과 형체와 육체 간에 서로를 볼 수 있고 볼 수 없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해놓으셨다.

 

우선 이 첫째 하늘의 재료로 만들어진 존재는 둘째 하늘의 재료로 만들어진 존재를 볼 수 없다. 즉 사람은 이 첫째 하늘의 종과 둘째 하늘의 종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둘째 하늘의 재료로 만들어진 형체로는 셋째 하늘의 재료로 만들어진 형체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둘째 하늘의 종은 셋째 하늘의 종을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종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은혜가 임할 때는 그 거룩한 자들을 볼 수 있다. 즉 아버지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어떤 종에게 명령하시면 그 종은 그 사람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도록 보여주고 또한 그 사람이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그의 귀에 음성을 들려준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하시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의 죄악을 철저히 미워하며 거룩한 육체의 생명으로 향하도록 길을 열어주시며 또한 그 길을 밝히 보여주신다.

 

반면 마찬가지로 원수도 자신이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푼다. 그로 하여금 더욱더 죄를 쌓으며 세상의 영광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 선악의 죄를 즐기며 이 세상을 따르는 자들도 타락한 종이 광명하게 바꾼 그 거짓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한편 그리스도께로 처음 창조된 120은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120의 밑에 있는 모든 종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만 볼 수 있었다. 또한 셋째 하늘의 120의 종들은 셋째 하늘의 눈을 가지고 있기에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을 자신의 손금을 보듯 보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각 사람의 마음과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계신 그 능력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세 하늘의 종들 가운데 사람의 예대로 말하자면 가장 더럽고 궂은일들을 하는 종들은 이 첫째 하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사람들의 거룩과 죄악의 한계가 찰 때까지 그 육의 생명을 그 어떤 사고나 원수의 해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하는 종들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그 종들은 각 사람의 의와 불의 거룩과 죄를 날마다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 누가 더러운 똥 냄새를 계속 맡고 싶고 계속 쳐다보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므로 인격체인 그들은 불의와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의 그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보며 그렇게 느끼지만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순종해 묵묵히 맡겨진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창조된 그 목적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에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반드시 있으니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감각할 때도 있다.

 

아버지께서는 종들이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고 공평하신 계획에 순종할 때마다 그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빛을 더해주신다. 또한 가장 험하고 궂은일을 오랫동안 하는 종들에게는 이미 좋은 곳에 거했던 그 셋째 하늘의 가장 높은 120종들보다 더 좋은 상급을 공평하게 준비해두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을 이룬 사람에게도 영원한 본향인 셋째 하늘에다 큰 상급을 공평하게 준비해두셨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자녀들이 입게 될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이다. 그리하여 부활한 그들이 아버지께서 예비해두신 그 모든 영광과 권세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리며 공의와 사랑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이 영광과 돈을 원하는 자들에게 좋은 외모를 요구하는 것과 같지 아니하시니 영원히 살 수 있는 자신의 형상을 받아 그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될 사람에게 오직 한 가지를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거짓말한 자식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혼낼 때 어떤 아이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용서를 빈다. 하지만 사람은 약하니 어떤 아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거짓말하고 다시금 용서를 빈다. 물론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부모의 앞에서는 거짓말하지 않다 보지 않을 때는 거짓말을 즐기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그 죄를 자기에게로부터 끊어내려는 아이가 있다면 그의 부모는 그 자식을 기뻐하며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인격체로 지음을 받았으니 자신이 원한다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누구든지 거룩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생명과 사망을 거룩한 셋째 하늘과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의 영광을 영원한 영과 썩어질 육을 동시에 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명을 원하면 사망을 셋째 하늘을 원하면 이 세상을 진리를 원하면 육을 내려 놓아야 하고 반대를 원하면 반대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생명을 원하는 자는 썩어질 것들과 사망으로 들어갈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그 한 가지만 정직하게 붙들고 오직 진리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므로 자신이 원하던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