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창조된 사람과 둘째로 창조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그 차이에 따라 첫째 사람은 종과 같은 모양이며 둘째 사람은 아버지께로 택하심을 받은 아들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하여 둘째 사람가운데 아버지의 자녀들이 나온다.
둘째 육 일째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아니기에 영(靈)이 없고 안식 후 팔 일째에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영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창조의 계획에 따라 육신만 있는 첫째 사람에게는 이 땅과 세상의 복을 주셨다. 그리하여 첫째 사람은 이 땅의 기름진 것들을 취하며 또한 실제로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다스리고 번성하며 정복할 수 있었다.
반면 영원히 사는 그 소중한 영을 받은 둘째 사람은 진리와 하늘의 영원한 복을 허락 받았다. 그러므로 둘째 사람은 나중에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의 낙원을 이끌고 내려오실 때 그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고 또한 영원한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도 그와 같이 다스린다. 하지만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과 또한 그 안의 모든 것들이 다 거룩하므로 먼저 다스리는 자도 의롭고 거룩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영적인 하늘의 복을 이루도록 둘째 사람에게는 의로움과 거룩함의 목적을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과는 달리 처음에 둘째 사람에게는 오직 하루의 수명을 주셨다. 그리고 하루 동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또한 그 거룩을 유지하면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의 영원한 영광과 권세를 주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당시에 둘째 사람에게는 거룩을 위해 10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의 기회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타락 후로는 그것이 어려워졌기에 물의 심판 후에는 둘째 사람의 수명을 1000년에서 120년으로 줄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때부터는 누구든지 짧은 120년 동안만 거룩을 이루고 유지하면 누구나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받아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는 죄악이 더해졌으니 그 기간이 더 줄었다.
한편 영이 있고 없음에 따라 생기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엇이 심장을 돌리며 뛰게 하느냐이다. 그러므로 둘째 사람의 심장은 그 안에 있는 영이 돌리는 것이요 첫째 사람은 영이 없으니 심장의 뒤에 있는 훈청이라는 것이 자동으로 돌린다.
첫째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훈청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장난감 중에 태엽을 감았다가 놓으면 어느 정도 앞으로 걸어가다 그 태엽이 다 풀리면 멈추는 것이 있다. 첫째 사람의 심장의 뒤에 있는 훈청이 바로 그 태엽 같은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태엽들로 동물들의 심장도 돌리도록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 둘째 사람들의 심장을 돌리는 그 태엽의 수명을 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긴 세월 동안 육적인 것들을 취하며 세상을 정복하며 다스리며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육과 세상을 즐기되 한 가지 원칙을 정하셨으니 누구든지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거나 하는 자들과 자신의 종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태엽은 더 빨리 돌게 해놓으셨다. 그리하여 죄악과 함께하던 첫째 사람은 정해진 수명보다 빨리 죽었다. 하지만 영이 없기에 죽음 후에는 완전히 존재가 없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들도 영원한 생명과 심판이 없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살다 가지 않고 오직 올바른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그렇다면 첫째 사람들은 무한한 세월의 수명을 다 누렸는가? 안타깝게도 그들 가운데 그 수명을 다 누린 자들이 없었으니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오직 자신만이 높아지려는 그 원수와 똑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남편과 아내가 아닌 자들과의 음행은 기본이었다. 짐승들도 안 하는 스와핑 관전 동성연애 같은 것이 흔했다. 각종 근친상간이 하나의 풍습이었다. 하지 않아도 마음과 생각으로 품었다. 또한 힘없는 둘째 사람들을 짐승처럼 잡아 죽였다.
이처럼 노아의 시대에는 이 마지막 때처럼 음란과 불의와 죄악이 땅에 충만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의와 죄에서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땅의 전체를 덮는 물로 심판을 받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스스로 원수를 따라 죄악을 즐긴 자들은 그 무한한 수명보다 더 빨리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둘째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영을 주시고 거룩을 그들의 목적으로 정해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첫째 사람들보다 죄를 덜 짓고 또한 제법 의로움과 거룩함을 따라 살고자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첫째 사람들처럼 세상에 거하며 불의와 죄를 쌓았다. 또한 창조자를 찾지 않았으니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도 의롭거나 거룩하지 않았으며 첫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도 결국 첫째 사람들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첫째 사람과 달리 영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죄의 형벌을 받고 있으며 또한 그 형벌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둘째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자신의 불의함과 죄악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미워하며 애통했던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노아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시니 당시 수많은 둘째 사람들과 첫째 사람들과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네피림들로부터 오직 노아만을 의롭게 보셨다. 그리고 그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도록 인도해주셨다. 그리하여 노아는 나중에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게 되는 은혜를 얻었다.
당시 노아는 거룩과 거룩한 자의 부활과 아버지께서 거룩한 자들의 안식처로 준비해놓으신 둘째 하늘의 낙원을 알게 되자 곧바로 가족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가족들에게도 거룩을 가르쳤다. 또한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요 친척과 친구와 이웃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도 불쌍히 여겼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에 순종해 가족들과 함께 방주를 지었으며 전 세계를 돌며 아버지의 심판과 구원을 전했다. 그러나 방주를 찾은 사람은 둘째 사람과 첫째 사람과 네피림 가운데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노아와 그의 집만이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에 대한 물 심판을 이렇게 행하셨다. 사람들은 바다와 강과 호수의 물만큼 많은 양의 물이 하늘과 땅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셋째 별의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물의 양을 공평하게 계획하셨으니 세 곳에 있는 물은 똑같다. 그리하여 그 세 곳의 물이 동시에 터져 나와 이 땅을 뒤덮은 것이 바로 노아홍수였다.
아버지께서는 둘째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영이 심장을 잡고 돌리도록 계획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신의 사망에 이르기 전 그의 영은 자신의 심장에서 그 손을 서서히 떼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심장이 서서히 멈추다 마지막 숨을 ‘허!’하고 쉴 때 그의 영이 육체 밖으로 나오므로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이 육체의 밖으로 나가는 기준은 무엇인가? 즉 사람은 무엇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는가? 그것은 바로 죄와 거룩의 한계이니 한 영혼이 거룩을 이루거나 또는 일정한 죄악의 한계를 넘으면 아버지께서는 육체에서 영혼을 빼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는 종들은 한 사람이 거룩을 이루면 그의 영혼을 꺼내어 황금마차에 태우고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의지해 이룬 거룩에 맞는 거룩한 육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게 죄의 한계가 차면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가 그의 영혼을 꺼낸다. 그리고 그를 어둠의 마차에 태워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로 심판을 받은 후 원수에게 이끌려 무저갱의 형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죄와 사망권세를 쥐고 있는 원수가 사람을 자신의 처소로 넣는 방법은 이와 같다. 원수는 사람의 피를 마시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처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요 오직 돈과 이 세상의 영광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원한다면 자기의 말을 듣고 행하라고 요구한다. 이때 욕심과 교만이 가득한 영혼들은 썩어질 돈과 세상의 헛된 명예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원수에게 판다. 그러면 원수는 그들을 자기의 자식으로 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며 키우되 다 이용한 후에는 자신의 창고에 넣는다. 즉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고 불의와 죄를 행하는 자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 마지막에는 그들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껏 육을 즐겨보고 싶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세상에서 명예를 얻지 못한다고 실망한다. 그러나 썩어질 것들과 헛된 것들은 사람을 유황불 못의 사망과 형벌로 이끄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을 붙들지 못하며 얻지 못하며 즐기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임을 깨달아야 한다.
원수는 또한 불법을 행하는 자이니 아직 죄악의 한계가 차기 전에 있는 영혼들을 추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시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죄악과 거룩의 한계가 찰 때까지는 종들을 통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완전하게 보호하신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똑같이 암에 걸려도 사고를 당해도 나이를 먹어도 자다가도 사는 자는 살고 죽는 자는 죽는 이유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할 것은 거룩과 죄의 한계에 이른 사람은 그기 비록 숨을 쉬며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죽을 준비를 마쳤다.
아버지께서 둘째 사람의 남자에게 영을 주셨을 때 아담에게는 육체적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거룩하신 생기가 사람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며 매우 중요한 것을 발생시켰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백혈구로 불리는 하얀 피다.
아버지께서는 하얀 피가 사람의 안에서 이러한 일을 하도록 계획하셨다. 먼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얀 피가 몸과 피로 들어온 더러운 것들을 죽이되 그의 영이 그것을 명한다. 또한 하얀 피에게 몸의 필요한 모든 곳에다 세포들을 배치시키라 명하니 몸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또한 사람의 영이 하얀 피를 늘 새롭게 필요한 만큼을 탄생시키니 육체의 생명이 유지된다.
여기서 사람의 영과 질병의 관계에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하얀 피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각종 질병들이다. 하지만 하얀 피는 자신이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의 영에게 명을 받는다. 즉 사람에게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질병이 생기는 것은 그의 몸 안에 있는 영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뜻이요 그것은 곧 그의 마음과 생각과 몸이 죄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가 있으니 태어날 때부터나 아기 때 생긴 질병은 아버지께서 그 영혼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신 것이니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다.
이로 보건대 결국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치료가 먼저지 약이 먼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질병을 통해 사망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숨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므로 먼저 영혼의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그의 영이 회복되니 하얀 피가 힘을 얻고 또한 세포들도 건강해져 육신의 깨끗함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버지의 말씀과 뜻에 순종해 인자의 살과 피를 늘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의 안에서는 죄가 떠나므로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행위로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길에 똥이 있으면 밟지 않고 피해서 걸어간다. 자신의 몸이나 옷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즉시 털어낸다. 자기의 자식이 쓰레기같이 더러운 것들을 만지고 있으면 더럽다며 데려다 씻긴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위해 범하는 불의와 죄가 바로 그 더러움과 같다. 그리고 그 더러움의 한계가 차면 사망으로 들어간 그 더러운 원수의 손에 의해 뽑혀져 사망의 심판을 받는다. 반면 거룩을 이루면 아버지의 거룩한 종들에 의해 뽑혀져 생명의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사람은 인격체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를 쌓고 악한 부활을 얻거나 거룩을 이루고 생명의 부활을 얻는 것은 아버지의 종들의 마음도 아니요 원수의 마음도 아니요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지만 악과 선의 역할이 있으니 원수는 돈과 세상을 보여주며 자기에게로 이끌고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내어놓으시고 생명을 택하라고 하신다.
결국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놓지 못하는 자는 원수가 보여주는 것을 얻고자 아버지께서 주신 그 육으로 불의와 악을 범하며 더러움을 쌓는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원수의 손에 뽑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은 후에 자신과 같이 더러운 원수가 유황으로 타는 그 무저갱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원수는 자신의 창고에 넣기 전에 아름다운 육체를 빚어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더럽고 죄악된 육을 입고 이 땅속의 불 못에 거하다 마지막에 원수와 함께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그 선한 것을 본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주신 보혈로 영혼이 살아나며 또한 원수가 자신의 마음에 심어놓은 그 선악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거룩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에 이르니 더러운 원수가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거룩을 완성하고 아버지의 거룩한 종들의 손에 뽑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거룩한 육체를 얻어 낙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이 땅으로 내려오니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해 자신의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린 이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누구에게든지 인격적으로 생명과 사망을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택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대로 거룩하신 아버지나 또는 욕심 많고 죄악된 원수에게로 그가 택한 것이 영원히 주어질 것이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