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조상들은 기와집이나 초가집에 살았다. 그리고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있었으며 창고나 손님을 위한 방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 집안에 모든 것을 두어 사용하기 편리한 집의 구조를 원하기에 사람들은 주로 양계장을 연상시키는 아파트나 혹은 단독주택에서 많이 생활한다. 또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많이 초대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며 먹고 마시며 즐기기를 원하기에 집도 정원도 크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은 산이나 바다의 근처에다 왕이 사는 집처럼 크게 궁궐처럼 짓는다. 그러나 이 첫째 하늘에서는 돈이 없으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
셋째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깨끗하고 편한 것을 원하며 또한 자신과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많이 초대해서 함께 기쁨을 나누기 원한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신령한 몸을 다스리는 거룩한 자녀들과 백성들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사용할 집의 구조를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준비해두셨다. 그리하여 그 거룩한 몸을 입은 자들은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해두신 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우선 한 영혼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룬 그 거룩에 따라 지붕의 둥그런 정도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한 지붕아래에 한 집이 있으며 그 안에 여러 용도로 쓰이는 방들이 있다. 그 방들 중 세 가지의 중요한 방이 있으니 첫째 자녀가 쉬는 방이요 둘째 말씀을 기억하며 묵상하는 방이요 셋째 다른 영혼을 만날 수 있도록 예비된 방들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낮은 거룩을 이룬 자녀의 집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세 번째의 용도로 쓰이기 위해서 한 집의 모든 벽과 벽이 허물어지고 또한 방의 한 칸이 옆의 다른 한 칸과 합쳐지므로 그 한 집의 모든 공간이 한 곳으로 변화가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집을 허물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니 이 땅과 비교하면 한 방의 문을 열거나 유리창을 여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중간에 막히는 것이 없는 넓은 한 공간이 된다. 그리하여 한 곳으로 변화된 그 넓은 곳에서 아버지의 모든 자녀들과 그리스도의 몸인 신령한 신부들이 다 함께 모여 거룩한 만찬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 한 채의 집이 다 합쳐졌을 때의 크기는 가장 높은 상급을 받은 한 아들이 자기가 쉬는 방에서 문까지 인간의 거리로 삼 일이 걸리면 그리스도의 몸도 똑같은 집을 얻는다. 하지만 신령한 영혼들은 백성을 위해 그들의 집이 새 예루살렘성의 밖에 있으니 아들이 올 때 그리스도의 몸이 그를 그곳에 영접하며 또한 백성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함께 잔치를 한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에서 가장 작은집이라도 이 땅에서 왕들이 거하는 그 넓은 곳의 두 배가 된다.
셋째 하늘의 집 크기를 사람의 수와 비교한다면 예루살렘 성에 만약 아들딸이 백 명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예루살렘 성 자체는 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이 사는 곳에 천 명이 거한다면 만 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예비되어있다. 그러므로 많은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사는 그 거처에 와 잔치를 벌일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아들딸의 집에 왔을 때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하셨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실제적인 사람들의 수에 크기를 맞추시지 않으시고 더욱 더 넓고 여유롭게 준비하셨다.
셋째 하늘에 거할 처소에는 그 어떤 것도 벽에 붙이지 아니한다. 하지만 붙이기 원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한 종이에 아버지의 말씀 들은 것을 기록해 벽에다 붙인다. 그리하여 시시때때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기록할 때 유대민족은 불로 돌에 새긴 후 그 돌을 벽에 달거나 혹은 땅 아래에 놓는다. 한편 이방인은 붓을 가지고 긴 가죽에 기록을 한 후 그것을 벽이나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놓고 자신이 생명을 얻게 한 그 말씀을 늘 묵상하며 감사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