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1. 선악과(善惡果: Tree of Good and Evil)는 무엇인가?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이 말씀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죄와 싸우는 사람은 자신의 안에서 그 죄를 뽑아내고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으니 그는 더 이상 범죄치 않고 오히려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리하여 죄를 이긴 그는 심판을 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을 하시니 에덴동산은 두 명의 사람과 각종 짐승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크기였다. 또한 첫째 사람들을 위한 세상과는 구별된 땅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태초의 에덴동산은 사람들이 현재 보고 있는 원수가 더럽힌 이 땅보다 또한 처음에 첫째 사람들을 위해 창조된 그 땅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는 그 낙원과 같은 곳에 기쁘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그 깨끗한 네 강물이 흐르게 하셨으며 동산의 곳곳에 각종 실과를 맺는 나무들을 심어 놓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에덴동산을 완벽하게 준비하신 후 아들을 통하여 둘째 사람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리스도의 모양인 아담에게는 자신의 영을 주시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형상과 모양이 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맺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놓으시고 의롭고 거룩한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아버지의 인격적인 창조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원한다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과 선을 이룰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이 욕심을 원한다면 그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망으로 향하는 죄와 불의와 허물들을 이루어 갈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동산 중앙의 두 나무는 사람의 몸과 혼의 중심인 마음 안에 심겨져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두 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것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면 선할 수도 있고 자신이 욕심을 품으면 악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선악이라는 것은 사람인 나 자신의 기준으로 정하는 선과 악이다. 그러나 사람은 선과 악의 기준이 의롭지도 공평하지도 못하다. 간혹 그 기준이 올바르다 하여도 선을 행치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또한 오직 보고 느끼고 향을 맡고 맛을 보며 만지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육적인 것들의 선함을 베풀고자 하며 그 육적인 것을 선하게 본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 다른 자를 돕거나 자녀들에게 육적인 좋은 것을 준다. 그러나 육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과 그 사람을 도운 사람이 그 육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것을 통해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게다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그 육적인 선을 행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의 선함이라는 것은 오직 썩어질 육신을 위한 선함이요 자신을 위한 것이니 열매 없는 그것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육신이 하루를 더 살며 죄를 이루는 것보다 그리하여 그 죄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보다 육신이 하루를 덜 살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므로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그 선하시고 기쁘신 생명을 영원히 얻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선악에서 돌이켜 의와 거룩을 행하는 것이요 그래야 그에게 의롭고 거룩한 그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가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자신과 다른 자들의 영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영원한 선을 멀리하고 썩어질 선을 따르게 되어있다. 또한 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자신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정하면서 자신은 정작 그 기준대로 행치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람이 선하면 얼마나 선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악해지면 한없이 악해질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도 지키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할 수 있다.'는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2. 악은 왜 생기며 그 악의 뿌리는 누가 심었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이 언제 왜 생기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은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생긴다. 예를 들어 놀부는 아무런 잘못 없는 자기의 동생을 내쫓았다. 자기 혼자 부모의 재산을 다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다. 심지어 죄 없는 짐승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으니 그것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그랬다.
두 번째로 악은 또한 나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내며 생긴다. 사람들은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그의 부끄러운 허물을 대중매체에 연일 드러낸다. 또한 그것을 보고는 덩달아 입방아를 찧는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행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영혼의 죄를 책망하고자 함이 아니요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을 이루고자 함도 아니다. 오직 남의 부끄러움을 열심히 드러내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동일한 죄를 숨길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여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자신의 마음 안에 오히려 더 강한 악이 생기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야 한다.
아버지께서 만일 에덴동산 중앙에 그 두 나무를 두셨다면 또한 사람이 자신의 원함에 따라 선이나 악으로 향할 수 있다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신 것이 아닌가?’ ‘원수를 에덴동산으로 허용하시므로 악이 발생토록 하신 것은 불의하신 것이 아닌가?’ ‘사람이 처음부터 오직 선만을 행하도록 하실 수는 없으셨나?’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시니 둘째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오직 자신과 같이 선한 것만을 넣어주셨으며 또한 거룩한 영을 주시므로 거룩하게 창조하셨다. 즉 사람의 마음 안에 그 두 나무가 심겨져 있어도 아버지께서는 선한 생명나무만을 심으신 것이요 선악과는 심지 않으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셨으니 로봇처럼 무조건 아버지의 말만 듣고 자신이 하기 싫어도 선만을 행하도록 하신 것은 아니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욕심을 품고 죄를 짓기 원한다면 혹은 선을 원치 않고 악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불의와 죄악이 충만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하고 거룩한 마음 안에 죄와 악의 뿌리를 심은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즉 선악이라는 그 가라지를 덧뿌린 자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원수였다.
결과로서 둘째 사람인 아담도 원수처럼 자신의 마음에 선한 것을 품고 그에 따른 선을 행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아버지보다 더 높아지려는 욕심을 품고 아버지께로 불순종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욕심을 이루려면 자기 자신이 정하는 불의한 선악기준을 택해서 따라야 한다. 아버지의 선하신 말씀의 기준을 따르면 그 욕심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품고 불순종과 악을 행한 아담이 그 원수처럼 타락했던 이유였다.
한편 사람이 타락했을 때 원수는 그 선악(죄악의 나무)과의 뿌리를 사람의 마음에 심었으니 그때부터 악이 사람의 그 어두운 굴을 통해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원수는 ‘거짓말을 해야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주지만 아버지께서는 ‘거짓은 죄이니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다.’는 마음을 주신다. 이때 마음에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은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되니 그는 점점 더 불의와 죄악을 범하게 된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에 선을 사모하는 자는 아버지께로 나와 말씀에 순종해 점점 더 선함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시거나 심지 않으셨다. 또한 사람자신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시거나 강제로 이끄시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선하고 거룩하게 창조하신 후에는 이제는 각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이루어가도록 인격과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이루어가게 되지만 오직 자기의 욕심과 유익만을 원하는 자는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르며 오직 불의와 악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버지의 인격적인 계획에 의하여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며 행하던 것을 얻게 된다. 즉 의와 거룩을 마음에 품고 행한 자는 거룩한 육체를 얻고 욕심을 품고 불의와 죄악을 행한 자는 더럽고 죄악된 육체를 얻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두 나무를 계획 하신 것은 참으로 의로우시고 선하신 것이다. 또한 말씀에 순종한 자들을 거룩한 자녀로 얻으시나 욕심을 품고 불의와 죄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에 맞는 심판을 허락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오히려 선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를 욕하며 지금도 저주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의 존재를 혹은 죄의 심판과 형벌이 있음을 모르거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욕심과 악을 원하기 때문이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세운 그 불의한 선악의 기준을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이요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원수와 함께 거하게 되니 그것은 죄와 불의를 행한 자신이 원수가 창조한 그 죄를 자신의 마음과 몸이 사랑했기 때문이요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3. 택할 수 있는 아버지의 선하심
그렇다면 선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결국 모든 선한 것은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의롭고 거룩하신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때 그리스도와 아버지처럼 선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에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와 같이 선했으며 아버지와 같이 선한 것만을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욕심과 자신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을 따라 순종치 아니하고 그 선악과를 취하므로 아버지의 선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은 후 점점 더 아버지의 선한 것이 아닌 점점 더 자신의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택해 나갔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랐으나 그것은 자신에게 있는 그 악한 것만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말씀에 순종을 통해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분명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가 거듭났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와 생각을 붙들거나 이 세상을 따르는 자는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4. 언제 타락하는가?
생명이신 아버지와 잠시 멀어지는 것은 그가 선악으로 인하여 범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그 타락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므로 생명이신 아버지와 영원히 멀어진 자는 영원한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잠시라는 것은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것이 있음을 볼 때 사람은 자신 스스로의 마음이 그 회복을 원치 않을 때 그 잠시가 영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선악의 죄로 타락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누구나 그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그 돌이키지 않은 자들을 말씀대로 심판하시어 그 영원한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있는 그 두 나무를 이해한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스스로 불순종하며 자신이 아버지를 멀리 떠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타락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그들의 마음이 원하는 그것을 허락하신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또한 종들도 자신의 자리와 주어진 것에 만족과 감사를 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와 더 좋은 것을 원할 때 타락을 하게 된다. 즉 말씀에 기록된 대로 욕심을 가진 자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낳고 욕심을 품고 스스로 타락한 그 죄는 아버지와 영원히 멀어지는 사망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수는 아버지의 가장 높은 그 120의 한 종으로 있는 것보다 그 아들의 자리를 원했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생명의 은혜를 주신 그 아버지의 자리까지 차지하기 원했다. 그리고 아담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아들로 있는 것보다 자기가 아버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해 불순종하고 타락한 것이다. 즉 어린아이가 머리가 좀 크더니 자기를 낳고 기른 부모를 자기의 머리에서 끌어내려 자기의 발 밑에 두고 부리려는 그 어리석음과 교만함과 무질서와 배은망덕이 타락으로 이끈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맞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없는 자가 그 자리에 앉는다면 다른 모든 피조물들에게 어떠한 악한 영향을 끼칠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상의 왕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을 가만히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그 의와 거룩에 이르기 위해 땀과 눈물과 고통과 피를 흘리지 않은 자에게 영광이 주어지거나 혹은 덜 흘린 자에게 더 높은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시며 인격체인 사람과 종도 그것을 의롭거나 거룩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오직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신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인격체가 원수와 아담 같이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품고 그것을 얻고자 자신과 다른 영혼을 타락케 하는 것을 사망으로 이끄는 죄로 여기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신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품은 것과 동시에 그 품은 마음을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낸 것들을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심판하시어 그 선과 악에 대한 심판과 상급을 영원히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