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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011. 5. 31. 08:47 | Posted by 살고자하는 마음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실 때 아들인 그리스도와 똑같은 모양으로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이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창조한 사람의 그 코를 통하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신의 거룩한 영을 부어주셨다. 그래야 거룩한 영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르며 의와 거룩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거룩한 영이 있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아버지처럼 욕심과 불의로 인한 죄는 미워하되 선함과 거룩함을 원한다. 또한 영원히 사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에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영원하신 나라를 사모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자 자신을 창조한 그리스도를 알아보며 따라간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경우에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거룩한 영이 있어도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명예를 얻고자 불의와 죄를 범하며 세상을 따라간다.

 

사람의 육체와 거룩한 영의 관계는 그릇과 물을 생각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는 그릇과 같고 영혼은 그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그릇에는 오줌이나 똥을 받고 어떤 그릇에는 마시는 물이나 몸에 좋은 포도주를 담는다.

 

또한 컴퓨터를 보아도 알 수 있으니 하드웨어의 성능이 좋아야 좋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듯이 영혼은 소프트웨어고 육체는 하드웨어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이 가진 육체는 286컴퓨터와 같다. 그러므로 느려서 답답하고 버그도 많이 생기고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매우 귀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사용하고자 사람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또한 현재의 하드웨어와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을 가진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거룩한 육체를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그릇에는 오직 깨끗한 영혼이 담기며 또한 의롭고 거룩한 영혼만 있으면 그 좋은 육체는 영원히 돌아간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시나? 즉 셋째 하늘에 준비해두신 그 거룩한 육체를 누구에게 주시나? 아버지께서는 외모를 취하시지 않으시니 사람에게 돈이나 능력이나 지식 같은 것을 원치 않으신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가 어찌 의롭고 거룩한 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즉 모든 사람에게 그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의롭고 공평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오직 거룩 한 가지를 원하신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공평하게 거룩한 영을 주셨으니 누구나 자신이 원한다면 거룩을 이루고 그 좋은 상급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과연 거룩해질 수 있는가? 사람은 그 선악의 죄가 있기에 의롭고 거룩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나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보혈의 피다. 그러므로 그가 어떠한 외모를 가졌다 할지라도 오직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며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면 그 선악과의 뿌리를 끊어내고 거룩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육체에서 나왔을 때 깨끗한 포도주로서 아름다운 그릇에 담기므로 가장 먼저 거룩한 육체를 입은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께서 세 하늘의 창조를 계획하신 목적과 아들을 통해 사람의 몸을 창조하신 목적과 사람의 안에 아버지의 거룩하신 영을 부어주신 목적과 아들을 십자가의 고통에 내어주신 목적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영생을 위해 그 목적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지만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결정은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만일 그 목적과 반대로 사용하고 버리면 즉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불의와 죄를 범하고 인생을 마치면 더러운 물이 된다. 더러운 물은 더러운 그릇에 담기니 그런 영혼은 더럽고 죄악된 육체를 입고 유황불 못의 영원한 형벌로 들어간다.

 

이처럼 영은 중요하되 처음에 창조된 남자와 여자의 육신에는 거룩한 영을 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육 일째 창조된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양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육신의 모양은 아들의 모양이 아니라 종의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체의 키가 4-7미터 정도로 장대했으며 그보다 더 큰 자도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들을 네피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네피림이라는 것은 육일 째 종의 모양으로 창조된 여자와 팔일 째 아들의 모양으로 창조된 남자의 사이에서 나온 자들을 칭한다. 그러므로 육일 째 창조된 그들은 팔일 째 창조된 사람과 비교할 때 더 먼저 창조되었으니 첫째 사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둘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품과 모양을 닮은 자녀를 원한다. 악하고 음란한 사람을 빼고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성품과 모양을 닮은 자녀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모양과 똑같은 둘째 사람의 남자에게만 자신의 그 거룩한 영을 부어주셨다. 그리고 그 둘째 사람이 자신과 같이 의롭고 거룩한 자녀가 되길 원하셨다. 반면 육신만을 허락 받은 첫째 사람들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취하며 세상을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있었으니 당시 둘째 사람들은 거룩한 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이 없는 첫째 사람들처럼 육의 욕심과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고자 불의와 죄악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러한 안타까움은 물 심판의 이후도 마찬가지였으니 오직 둘째 사람만 남게 된 노아의 이후로도 사람들은 오직 육의 욕심과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거룩하고 영원한 영을 버려버리고 점점 더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갔다.

 

첫째 사람과 둘째 사람은 이렇게 지음을 받았다. 우선 첫째 하늘의 종들은 셋째 하늘의 종들에게 사람들을 창조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그들은 첫째 사람의 육을 창조하는 데는 사람의 시간으로 1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들은 발에서부터 만들기 시작해 마지막으로 머리를 만들었다. 그들이 발부터 만들어진 것은 첫째 사람이 땅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첫째 사람은 아버지께 이 땅과 세상의 육적인 축복을 얻어 누렸으나 아버지의 거룩한 영이 없기에 영원한 생명은 없다. 게다가 종의 모양이기에 그 모습이 현재의 사람과 많이 달랐다.

 

그 종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명을 받은 셋째 하늘의 종들의 명에 따라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대로 둘째 사람의 남자의 육체를 창조했다.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위해서였다. 둘째 사람은 모두 24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둘째 사람의 육체를 만들 때는 첫째 사람과 똑같이 12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12시간이 더 걸린 것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거룩한 영과 마음을 주시며 더욱더 신중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둘째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라고 불리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넣어주셨다. 즉 그 마음을 육체와 육신의 혼과 거룩한 영의 사이에다 조화롭게 연결하시느라 12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짐승은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 뜨는 시간에 태양은 4시간 만에 창조하도록 계획하셨으니 12시간은 참으로 오랜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아들과 같은 모양인 사람을 그 어떤 피조물들보다 더 완벽하고 정밀하게 계획하셨다. 또한 당시 종들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둘째 사람의 창조를 가장 어려워했으며 그리하여 애를 많이 썼다.

 

둘째 사람은 첫째 사람과는 달리 아버지께로부터 거룩한 영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는 의미로서 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으로 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의 태중에서 아기가 생길 때 머리부터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것이 하늘에서 왔음을 증거한다.

 

당시 첫째 사람들은 아버지의 영이 없었기에 그저 이 세상의 육적인 것들만을 추구했으며 오직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즐기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육과 이 세상의 육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린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께로 창조 받은 그 목적대로 자신을 사용한 것이다.

 

반면 둘째 사람은 거룩한 영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의 목표는 육이나 세상의 축복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거룩함이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둘째 사람가운데 어리석은 자가 많다. 그러므로 거룩한 영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의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라 오직 눈에 보이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세상의 영광만을 취한다. 즉 아들의 형상과 모양인 둘째 사람이 자신을 영생 없는 첫째 사람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 있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고 거룩에 이르기 위해 오직 영에서 나오는 거룩한 생각만을 따른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낙원과 함께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 둘째 하늘과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셋째 하늘의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곧 다가오는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서는 고난을 기쁘게 받는다. 즉 육신의 즐거움으로 이끄는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아깝지 않게 다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만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이 없다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그러나 있다면 가장 복된 자들이다.

 

반면 그 마음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거나 버린 사람은 욕심을 품고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을 취하며 자신을 더럽힌다. 그리고 소망 없는 세상에 거하며 고통과 두려움가운데서 허덕이다 육신의 죽음 후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아들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영이 없는 첫째 사람이나 네피림처럼 사는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허무한 자들이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육신을 주셨으니 육에서 나오는 생각이 있되 거룩한 영과 살고자 하는 마음도 오직 둘째 사람에게만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짐승처럼 그저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만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아들처럼 살다 마지막에 자신을 아버지께로 드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인격체이니 둘째 사람으로서 영이 없는 짐승처럼 살 것인지 혹은 그리스도처럼 살 것인지 그 선택과 결정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지만 생명과 사망도 자신이 영원히 얻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