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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가?

2013. 4. 12. 09:28 | Posted by 살고자하는 마음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인자로서 육신의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내어 놓으신 후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 몸을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보이신 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주시며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로 오르셨다.

  

   반면 땅속에서 올라온 원수는 육의 필요와 욕심 그리고 이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시험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말씀으로 그 시험들을 이기셨으니 시험에서 진 원수는 다시금 땅속에 있는 그 무저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내려오시기 전에 원수도 땅의 영광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올라오니 그것은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자신과 같이 불의와 죄악을 행한 자들을 큰 환난으로 추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큰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어떤 자는 둘째 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자 함이요 어떤 자는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시기 바로 전에 땅속에서 다시 올라오는 그 원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와 원수를 예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다리는 자의 마음과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낙원을 가지고 내려오시는 참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의 마음과 믿음은 오직 아버지의 에 있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 날까지 살고자 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오직 거룩에 애쓴다. 거룩하고 흠 없는 자를 데려가겠다는 그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반면 가짜 평화를 가지고 땅에서 올라오는 그 가짜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도 자신이 지금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런 생각과 말들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영적인 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요 자신의 육적이고 세상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그 풍성함을 이루어준 자가 오면 자신을 더욱더 풍성하게 할 것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과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마지막 날까지도 헛된 세상을 따르며 썩어질 육을 취하게 되어있으되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원수와 아버지께로 증거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보실 때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며 세상에 마음을 둔 자는 악하고 가증한 자이다. 그가 악하고 가증한 이유를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한 부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결혼할 때 자기의 남편에게 맹세한 그 혼인서약을 잊었다. 그리고 약속을 잊었으니 여자의 마음은 자기의 눈에 보기 좋은 다른 한 남자에게 갔다. 그리고 마음이 있으니 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집에 들어와 먹고 마시며 자기의 남자와도 성을 맺었다. 게다가 부부의 관계를 하면서도 그 여자의 마음은 다른 남자에게 가있었다. 그러다 그 남편이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과 그 남자 중에 오직 한 남자만 택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세 번을 타일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그렇게 행하고 싶었다. 이에 그 남편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그 여자를 고이 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도 얼마든지 말과 행위를 할 수 있다. 즉 원수처럼 ‘마음 없는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첫사랑을 잊은 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날 때 자신이 얻은 그 거룩함을 자기의 신랑을 위해 유지하겠다는 그 약속을 잊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신 그 첫사랑을 잊었으니 이 세상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바친다. 하지만 원수는 자신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을 불의하고 죄악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아비요 믿는 자에게 다른 남자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는 원수를 자기의 아비와 남편으로 섬기고 있는 음란한 자이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첫사랑을 잊은 자도 자기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도 얼마든지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다. 또한 그 마음을 가지고 얼마든지 설교도 간증도 전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런 마음 없는 행위는 아무리 오랫동안 많이 드려도 받으실 수 없으시며 그런 말과 행위를 드리는 자도 안 받으신다. 그 이유는 그 마음 없는 것들은 오히려 음란하고 악한 것이니 그를 음란하고 악한 자로 보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이키지 않고도 끝까지 자신의 남편과 함께 거하려는 그 여자가 음란하고 악한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란한 자들이 원수에게 얻은 육과 세상의 만족과 기쁨을 가지고 외치는 두 가지가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를 멀리하며 마음이 더럽고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그들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는 자는 그 어리석은 것에 빠지지 아니한다.

 

   첫째 그들은 자신이 지금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되 그들의 마음은 처음부터 육과 세상에 있으니 주님의 내려오심을 오히려 거부한다.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실 때 그것들을 다 버려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수의 길을 예비하는 그 거짓선지자가 오기를 사모하며 외치고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니 육과 세상의 복과 함께 말세와 재림도 곁들여 외친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에 있는 자들을 분별하는 것은 참으로 쉽다.

  

   둘째 그들은 주님이 내일 온다 하매 ‘어제까지는 우리가 이 세상을 즐기며 오늘 하루 신실하게 살아보자.’고 외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이 세상을 즐기며 ‘내일은 우리가 낙원에 있으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허황된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악하고 가증한 자들을 원수로 생각하신다. 또한 그 어리석은 자들의 모든 것을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하신다. 하지만 그 분노를 참으시며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신다.

 

   반면 자신의 선악을 회개하고 세상과의 음행에서 돌이키는 자에게는 크신 은혜를 베푸시어 자신의 품에 가까이 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이 받은 진리의 순종으로 거룩하게 되어 그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얻은 후 아버지의 영광을 보고도 죽지 않는 그 거룩한 곳에 서게 된다. 또한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늘 거룩하고 기쁜 만찬을 행하며 만국백성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린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이킨 그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복을 얻는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